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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전시회

[DDP뮤지엄]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 아트 : 1960s Swinging London

by Exhibition_Tistory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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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시회를 다니며 기록을 남기고자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오픈한 전시회입니다.

( ~2023.7.2까지)

 

전시회를 방문하기 전, 참고하셔도 좋고

못 가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장 내 작품들은 모두 직접 찍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 내용 포함하였습니다.

*Sexy 섹션은 성인만 관람 가능합니다!

 

 

 


 

 

 

전시명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 아트

(DAVID HOCKNEY & BRITISH POP ART)

: 1960s Swinging London

관람 기간 및 관람시간

2023.03.23 (목) ~ 2023.07.02 (일)

월요일-일요일 10:00 - 20:00

 

*휴관일 없음

*공휴일 정상운영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전시1관 (지하2층, 배움터)

 

 

오디오 가이드

무료: H.POINT 앱 → 사운드 갤러리

 

도슨트

진행 요일: 월, 화, 수, 목, 금 (주5일)
진행 시간: 11:00, 14:00, 16:00 (일3회)

 

 


 

 

<영국 팝아트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 중기 작품 60여 점과 팝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리차드 해밀턴의 밝은 색채와 대담한 형태의 콜라주부터 비틀스, 데이비드 보위, 롤링스톤즈 등 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작업으로 유명한 피터 블레이크의 재치 있고 반항적인 이미지까지, 이 전시회는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던 1960년대 런던 세대의 에너지와 정신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전설적인 인물들의 작품과 함께 팝아트 운동에 크게 기여한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데렉 보쉬어, 마이클 잉글리시, 앨런 엘드리지 등.

총 영국의 팝 아티스트 15인의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 들어가기 전 포토존

 

입구


🖼️

【1960s Swinging London】

🎧#1. Intro

: 이번 전시 제목에 사용된 '스윙잉 런던'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급변하던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가득한 1960년대 영국의 런던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암울하고 보수적인 도시에서 자유와 희망, 약속이 가득한 세계의 수도로 탈바꿈된 영국 런던. 이러한 열정과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팝아트는 음악, 패션, 광고 같은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에 도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은 그 시대를 정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POP ART is...]

Popuar, Transient, Expendable,

대중적이고, 덧없고, 소모적이고,

Low cast, Mass produced, Young,

저비용으로, 대 생산이 가능하고, 젊고,

Witty, Sexy, Gimmicky,

위트 있고, 섹시하고, 요염하고,

Glamorous, Big business,

매력적인, 빅 비즈니스이다.

-Richard Hamilton-

 

<데이비드 호크니와 브리티시 팝아트>

1960s Swinging London

: 스윙잉 런던은 1960년대 영국 런던에서 등장한 문화 및 사회 현상입니다.

낙관주의, 자유, 실험 정신이 특징이었으며, 과거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성장하면서 그 동력이 되었습니다.

패션 측면에서 스윙잉 런던은 미니스커트, 모드 슈트, 밝은 패턴 등 대담하고 화려한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음악 또한 이 시대의 사운드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 비틀스, 롤링 스톤즈, 더 후와 같은 영국 밴드가 등장하면서 이 장면의 중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술적으로도 스윙잉 런던은 장난기와 경건함을 특징으로 하며,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받아들여 종종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대담한 색상과 소비자 이미지를 사용한 팝아트는 당시의 지배적인 스타일이었으며, 리처드 해밀턴,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블레이크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운동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런던은 젊고 패셔너블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부티크가 문을 열면서 스윙잉 런던 신(scene)에서 중용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의 에너지와 흥분은 영국 문화와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계속 기념되고 있습니다.

 

아이코닉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1960년대 당시의 문화 예술적 풍경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스윙인 런던과 관련된 가장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리처드 해밀턴 : 영국 예술가이자 팝아트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해밀턴은 광고와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결합한 콜라주 스타일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 영국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호크니는 팝아트 스타일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 다채롭고 종종 자전적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브리짓 라일리 : 옵아트 운동과 관련된 영국 화가인 라일리의 작품은 기하학적 패턴과 착시 현상을 이용해 움직임과 깊이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터 블레이크 : 영국 예술가인 블레이크는 대중적인 이미지와 도상학을 결합한 콜라주 스타일의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 스코틀랜드 출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파올로치는 인디펜던트 그룹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혁신적인 재료 사용과 대중문화 및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예술가들은 다른 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스윙잉 런던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전시장 내 설명

 

🎧#2. 스윙잉 런던

: 1950년대까지의 런던이 흑백이었다면 1960년대의 런던은 컬러였습니다.

그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은 10년이었죠.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60년대 런던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닙니다."

1960년대 당시 런던의 젊은 세대들은 전쟁에 참여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부모 세대와 달리, 청춘을 만끽하고 더 많은 즐거움과 자유를 누리며 젊음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TV나 영화 같은 매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들의 취향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대중문화는 보다 주목받기 시작했죠. 비틀스, 롤링스톤즈 등 영국의 로큰롤 밴드가 '영국의 침공'으로 불리며 전 세계를 강타했고, 여성의 해방과 자유를 상징한 디자이너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유행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반전을 외치며 자유와 평화를 추구했던 히피 문화, 스파이, 정부가 뒤섞인 자극적인 정치 스캔들, 동성애의 비범죄화, 영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이 된 바바라 캐슬 등 이 모든 것이 1960년대 영국을 정의하는 것처럼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시대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 스윙잉 런던의 중심에는 팝아트 운동과 15인의 아티스트가 있었죠. 이 시대가 사랑하며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역사가 된 젊은 시절의 데이비드 호크니부터 리차드 해밀턴, 피터 블레이크,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앨런 앨드리지, 데렉 보쉬어, 패트릭 콜필드, 마이클 잉글리시, 앨런 존스, R.B.(로널드 브룩스) 키타이, 제럴드 랭, 피터 필립스, 브리짓 라일리, 콜린 셀프, 조 틸슨까지.

그들은 이 역동적인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갔을까요? 지금부터 쇼케이스 안의 내용을 통해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앨런 앨드리지 (Alan Aldridge)

피터 블레이크 (Peter Blake)

데렉 보쉬어 (Derek Boshier)

패트릭 콜필드 (Patrick Caulfield)

 

마이클 잉글리시 (Michael English)

앨런 존스 (Allen Jones)

R.B 키타이 (R.B Kitaj)

브리짓 라일리 (Bridget Riley)

피터 필립스 (Peter Phillips)

제럴드 랭 (Gerald Laing)

조 틸슨 (Joe Tilson)

콜린 셀프 (Colin Self)

리차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Eduardo Paolozzi)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밤의 런던 (London by Night)

R.B 키타이

1969, 리소그라프, 77.5*57cm

피리 할라스 (-Piri Halasz) 1966년 4월, 타임지

🎧#3. 스윙잉 런던을 알리는 타임 잡지

: 1966년 4월 15일 '타임'지의 표지입니다.

'스윙잉 런던'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요. 타임지는 '런던: 더 스윙잉 시티'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영국 하면 떠오르는 빅벤과 빨간색 2층 버스, 20세기 영국을 넘어 세계의 중심이 된 비틀스와 롤링스톤즈, 그리고 신나는 디스코와 카지노까지 대중이 상상하는 힙하고 패셔너블한 모든 것들과 런던의 연관성을 이 표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대영제국이란 권위 아래 지켜온 진중함이 새로운 세대의 자유로운 문화에 의해 변화해 나갔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죠. 앞서 서구의 중심에 서 있었던 로마, 파리, 뉴욕 등 역사적 대도시와는 다른 형태로 고전과 현대가 충돌하며 1960년대 새로운 역사의 중심지는 런던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듯한 이미지이기도 한데요. 표지조차 콜라주 작업으로 이루어져, 당시 콜라주 작업이 유행이었던 팝아트가 표지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죠. 막상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50여 년 전 런던의 풍경을 보고 계신 1966년 타임지 표지를 통해 감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혹한 런던 67 (Swingeing London 67)

리차드 해밀턴

1968, 포토리소그래피, 70*50cm

🎧#4. 리차드 해밀턴의 스윈징

: 리차드 해밀턴의 1967년 신문 콜라주인 이 작품은 화가, 팝스타, 작가, 배우 등 1960년대의 셀럽들이 모였던 아지트의 소유주이자 해밀턴의 아트 딜러인 로버트 프레이저와 록밴드 롤링스톤즈 멤버 믹 재거, 그리고 키스 리차드가 마약 혐의로 체포된 사건으로 인해 제작되었습니다. 해밀턴은 밴드 멤버들이 법정에 도착했을 때의 복장, 그들이 타고 온 차량, 믹 재거와 로버트 프레이저가 수감 중 먹은 음식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는 점, 당시 재거의 여자친구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모피 러그를 제외하고는 나체로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점과 같이 실제 사건과는 관련 없고 선정적인 것들뿐인 신문 기사들로 작품을 채웠는데요. 롤링스톤즈의 팬들 사진, 특히 "당신의 우상이 투옥되는 것을 보는 고통"이라는 캡션이 달린 우는 여성의 클로즈업 사진은 두 남자가 벤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진과 대조되어 이야기가 언론에 의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이 페이지의 헤드라인인 "스톤즈: 어 스트롱, 스윗, 스멜 오브 인센스"는 경찰이 범죄 현장에 도착했을 때 대마초 냄새를 덮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던 '인센스'향 냄새를 나타내는데요. 해밀턴은 헤드라인을 사용하여 '인센스드' 즉 격양된 언론과 기사들을 교묘하게 조롱했습니다.

작품 우측 중앙에 사용된 스윙잉 신나는 도시는 해밀턴의 친구들에게 부과된 '스윈징 가혹한' 처벌에 대한 말장난입니다. 왜곡되고 날조된 가사들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언론에 대해 작품으로써 발언하는 해밀턴의 모습.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스매싱 타임 (Smashing Time)

앨런 앨드리지

1967, 리소그라프, 75.6*100.8cm

🎧#5. 앨런 앨드리지의 스매싱 타임

: 앨런 앨드리지가 디자인한 1967년 풍자 코믹 영화 "스매싱 타임"의 포스터입니다.

데스몬드 데이비스가 감독한 이 영화는 성공을 위해 영국 북부에서 런던으로 온 브렌다와 이본, 두 명의 소녀가 돈과 명성을 쫓는 과정에서 망가지는 이야기로, 화려하게만 보이는 스윙잉 런던의 이면을 보여주는 풍자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는 흥행에 있어 화려한 성공이 아닌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영화 평론가 알렉산더 워커는 1967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두고 '스윙잉 런던을 패러디하기에는 너무 늦게 개봉했다.'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60년대 스윙잉 런던은 상상이상으로 빠르고 급격한 변화 속에 있었다는 작은 방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던 1960년대 런던 세대의 에너지와 정신을 담아낸 스윙잉 런던 존을 관람하셨는데요. 이제 이 전설적인 인물들의 작품과 함께 팝아트 운동에 크게 기여한 인디펜던트 그룹의 섹션방으로 이동하여 작품들을 더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팝송 포스터 시 with 크리스토퍼 로그

(Pop Song Poster Poem with Christopher Logue)

데렉 보쉬어

1966, 스크린 프린트, 76.2*100.9cm

알 속에 숨은 소년, 그림 형제의 6개의 동화를 위한 삽화

(The Boy Hidden in the Egg from Illustrations for Six Fairy Tales from the Brothers Grimm)

데이비드 호크니

1969, 에칭, 83.8*61cm

《 Six fairy tales 》

:1970년 데이비드 호크니와 피터스버그 출판사는 야곱과 빌헬름 그림 동화와 39개의 에칭 작품을 엮은 동화를 출간했습니다.

호크니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그림 형제의 220편의 이야기 중 '작은 바다 달팽이(The Little Sea Hare)', '올드 링크랭크(Old Rinkrank)',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 여섯 편을 선택했습니다.

호크니는 각 동화에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생생한 이미지를 선택하여 분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포스터는 1970년대 독일 쾰른의 슈피겔 갤러리(Galerie der Spiegel)에서 열린 'Das Graphische Werk' 전시회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작은 바다 달팽이(The Little Sea Hare)' 편의 '달걀 속에 숨은 소년(The Boy hidden in an Egg)' 이미지를 재현한 것입니다.

23세 또는 24세 소년 두 명, C.P. 카바피의 14개 시를 위한 삽화

(Two Boys Aged 23 or 24 from Illustrations for Fourteen Poems from C.P. Cavafy)

데이비드 호크니

1966-67, 리소그라프, 81.3*67.3cm

알렉토 에디션을 위한 에칭과 리소그래피

(An Etching and Lithograph for Editions Alecto)

데이비드 호크니

1973, 스톤 리소그라프, 93.9*68.5cm (96.5*69.3cm)

그림 형제의 6개 동화 (Six Fairy Tales from the Brothers Grimm)

데이비드 호크니

1970, 리소그라프(or 에칭?), 46*60cm

(*영문 설명에는 리소그라프가 아닌 에칭으로 되어 있음.)

최면술사 (The Hypnotist)

데이비드 호크니

1963, 리소그라프, 46*34cm

코르뷔지에 의자와 러그 (Corbusier Chair and Rug)

데이비드 호크니

1969, 오프셋 리소그라프, 93.3*66cm

맨해튼 상류층 (Manhattan Tophat)

패트릭 콜필드

2002, 스크린 프린트, 42.2*29.8cm

스윙잉 런던 섹션이 끝나고..

미디어 아트 일부


🖼️

【인디펜던트 그룹】

🎧#6. 인디펜던트 그룹

: 인디펜던트 그룹은 1950년대 영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예술과 문화에 대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 불만을 품은 진보적 예술가와 지식인들에 의해 결성되었습니다. 미술계에서의 인디펜던트 그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회색빛 긴축 시대가 끝나갈 무렵 '컬러 티비'가 등장하며 당시 '테크니컬러' 폭발로 이어진 영국 미술계의 전환기, 1950년대 후반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고 영국 문화의 기존 규범에 도전하는 접근 방식을 취했던 이들의 연구는 팝아트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작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심리적 상처와 소비문화의 도래로부터 나타난 새로운 낙관주의가 반영되었고, 풍요로움의 표현은 종종 공허함으로 물들거나 새로운 소비주의에 대한 사회의 집착을 풍자하기도 했죠. 또한 이 예술가들은 작품 제작과 더불어 전시를 진행함에 있어 다방면으로 협업하며 어떤 작가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거의 알 수 없는 콜라주 같은 방식으로 기존 영국 미술 시장에서 지배적이던 전통적인 개념의 '저작자'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였는데요. 콜라주는 이 그룹에서 나온 많은 예술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이었으며, 당시 영국에서 일어난 재건 과정을 반영하는 기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유입되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적 잡지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자극적인 색채와 생동감으로 큰 영감을 주었고, 이러한 출판물에서 스크랩한 이미지는 원재료나 이미지의 기초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덧붙여 인디펜던트 그룹은 시각 예술뿐만 아니라 당대 건축 분야의 다른 여러 운동의 선구자로서 오늘날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무제 (No Title)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67, 세리그라프, 38*25.5cm

🎧#7. 문 스트립 엠파이어 뉴스의 일부

: 이 이미지는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의 100장의 포토리소그래피와 스크린프린트 시리즈인 '문 스트립 엠파이어 뉴스'의 일부입니다. 이 시리즈는 우연에 대한 파올로치의 초현실주의적 관심에 따라 낱장으로, 정해진 순서 없이 핑크색 아크릴 상자에 담겨 있었는데요. 대신 파올로치는 사람들이 이 핑크색 아크릴 상자를 열고 시리즈를 보면서 파올로치가 만든 시각적 언어 안에서 선택과 우연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는 편집자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파올로치는 만화, 과학, 기술, 역사에서 기하학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 소스를 활용하여 매스 미디어 문화의 과잉에 대한 절충적이고 풍자적인 연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텍스트 또한 파올로치의 작업에 중요한 구성 요소로써, 파올로치는 잡지와 신문의 사설들을 독창적인 스타일로 재배치하여 이 시리즈의 텍스트 전용 시트에 반영하였습니다. 보시는 작품은 바 또는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품목 목록과 관련된 독일어 텍스트와 해당 번호가 매겨진 이미지입니다.

튜링 (Turing)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99, 수채로 채색한 스크린 프린트, 76*56cm

《 튜링 (Turing) 》

: 에두아르도 파올로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앨런 튜링의 삶과 업적에서 영감을 받은 판화 시리즈 등 그의 많은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선구적인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영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1954년 자살했습니다. 파올로치의 판화 시리즈인 "있는 그대로"는 1968년에 제작되었으며 튜링의 삶과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총 16개의 판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판화에는 튜링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이미지와 튜링의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판화에는 수학 및 논리적 개념의 다이어그램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판화에는 기계 및 기술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판화에는 인간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어 튜링의 과학적 업적과 그의 개인적인 고난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합니다.

이 판화는 애칭과 아쿠아틴트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으며, 복잡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원래는 70세트 한정판으로 제작되었으며, 각 세트에는 16개의 판화 포트폴리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파올로치의 튜링 판화는 과학과 문화의 교차점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술 작품으로 간주합니다.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와 에든버러의 국립 현대 미술관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많은 그림, 많은 재미 (Lots of Pictures, Lots of Fun)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70, 세리그라프, 76*56cm

*스튜디오 인터내셔널 매거진 1971년 10월 호 표지 디자인으로 의뢰된 이 작품은 앤디 워홀, 에드 루샤,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을 참고하여 미국 팝아트 운동에 대한 '높이의 상태'를 논평한 작품입니다.

🎧#8. 많은 그림, 많은 재미

: 이 이미지는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매거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의 1971년 10월 호 표지를 위해 제작하였습니다. 시선을 붙잡는 매혹적인 색감, 낯설고 혼란스러운 소재들의 병치, 완곡한 정치적 논평의 요소를 담고 있는 이 이미지는 파올로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앤디 워홀의 스프 캔, 에드 루샤의 스팸, 재스퍼 존스의 미국 국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하프톤 인쇄 기법 등 다른 미국 팝 아티스트의 이미지들 참조한 게 재미있습니다. 혹자는 거대한 코끼리의 모습이 팝아트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을 압도하는 미국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많은 그림, 많은 재미'라는 제목과 화나 보이기보단 즐거워 보이는 강아지의 표정을 봤을 때, 다양한 팝아트 예술 실험이 이어지며 많은 작품, 즉 많은 그림을 통해 팝아트가 확산되어가는 당대의 모습을 호기심 넘치게 지켜보고 있었을 파올로치의 시선이 담긴 듯 느껴져 좋았습니다.

잰더 (Zanders)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80, 리소그라프, 68*50cm

전시장 한 쪽 벽면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소호 재즈 페스티벌 (SOHO JAZZ FESTIVAL)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90, 세리그라프, 92*63cm

기억 행렬 (Memory Matrix)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67, 스크린 프린트, 98.1*65.4cm

🎧#9.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 인디펜던트 그룹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에두아르도 파올로치는 인디펜던트 그룹의 첫 공식 모임을 이끌었던 예술가입니다. 사실 그는 인디펜던트 그룹 이전부터 이미 대중문화, 기술과 예술 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 그룹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는데요. 파올로치는 대중문화, 공상과학, 광고뿐만 아니라 미래파, 다다이즘 외 여러 예술 운동에 다양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각, 콜라주, 판화 등 기법이나 재료에 대한 편견 없이 여러 가지 매체로 작업을 했죠. 그중 특히 콜라주 기법을 즐겨 사용한 파올로치는 '인간의 모든 경험은 하나의 거대한 콜라주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는데요. 잡지와 신문 등에서 찾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붙이고 통합한 그의 작품은, 콜라주라는 형식을 통해 과도한 소비주의와 급격한 기술 발전의 시대를 다루며 영국에 팝아트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 카탈로그 ("This is Tomorrow" exhibition catalogue)

1956, 18*17cm

🎧#10. 이것이 내일이다

: 1956년 인디펜던트 그룹이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개최한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회 카탈로그입니다. 이 전시의 목적은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설렘과 가능성에 대해 축하하는 동시에 우려와 비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기술, 과학, 소비주의 등 현대 문화와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는 테마로 나뉘어 다양한 몰입형 환경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시각 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당대로선 낯설었을 이 전시에는 하루 천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고,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영국 팝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이 전시회의 카탈로그에 사용된 리차드 해밀턴의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실질적으로 미술 역사에서 첫 번째 팝아트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사실상 이 전시로 인디펜던트 그룹의 공식적인 활동은 종료되었지만, 소속 멤버들 간의 협업은 인디펜던트 그룹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제의 내일이 오늘이 아니기에 오늘의 내일은 예상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이 인디펜던트 그룹이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라고 하는데요. 그들의 말처럼 우리가 꿈꾼 내일이 막상 오늘이 되었을 때, 꿈꾸었던 모습과는 다른 오늘인 경우가 많죠. 인디펜던트 크룹은 막연한 희망과 환상으로 망각하고 있었을지 모를 당대의 대중에게 예술로써 각성을 유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차드 해밀턴』

프랜시스 베이컨의 예술가 초상 (Retrato del artista por Francis Bacon)

리차드 해밀턴

1971, 세리그라프, 30*34cm

🎧#11. 리차드 해밀턴

: 영국의 팝아트는 리차드 해밀턴과 함께 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처드 해밀턴은 영국의 팝아트를 상징하는 대표 예술가입니다. 인디펜던트 그룹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해밀턴은 자신의 작품에 대중적인 이미지와 문화적 소스를 사용할 방법을 탐구했고, 이를 통해 대중적 이미지가 예술에 적용되도록 적극적으로 팝아트의 발화를 촉진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광고, 만화, 영화, 스틸 사진 같은 대중문화 이미지를 콜라주로 통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로서는 예술의 전통적인 가치와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새로웠고 이와 같은 기법적 연구와 예술적 도전이 팝아트 운동을 확립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피카소 사이에 서열은 없다.'는 리차드 해밀턴의 말은 그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팝아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은유하는 명언으로 자리 잡았죠. 리차드 해밀턴은 그의 제자였던 피터 블레이크와 데이비드 호크니뿐만 아니라, 미국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중문화와 키치에 대한 그의 재능과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커다란 영감이 되고 있으며, 21세기 영국 미술계의 슈퍼스타인 데미안 허스트는 리차드 해밀턴에게 "The Greatest!"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제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Just what was it that made yesterday's home so different. so appealing?)

리차드 해밀턴

1964, 시바 크롬, 20*25cm

*이 이미지는 영국 전후 예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50년대 중후반 소비 사회의 부상을 정의하게 되었으며 팝아트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이 작품의 기반이 된 1956년에 제작된 원본 콜라주는 그보다 몇 년 앞서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리차드 해밀턴은 '남자, 여자, 음식, 역사, 신문, 영화, 전자제품, 자동차, 우주, 만화, TV, 전화, 정보'와 같은 카테고리를 작성했습니다. 각 카테고리에 맞는 이미지는 미국 매거진 캐시(Cache)에서 소스를 가져왔습니다. 전후 침체된 경제로 중산층 대부분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국에서 최첨단 사치품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은 미국식 물질주의를 패러디한 것이었습니다.

리차드 해밀턴은 이 작품의 제목을 잡지의 장식에 있는 일러스트의 캡션에서 발견했습니다. 대중문화와 현대 기술에 대한 그의 아이러니한 관심은 콜라주 작품에 반영되었고, 이 콜라주는 그 당시 다양한 정보 소통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안락의자, 커피 테이블, 화분, 램프가 있는 가정 인테리어를 묘사하며 진공청소기, 전화 통화 중인 여성이 나오고 있는 TV, 현재는 구식으로 보이지만 1950년 당시 최신식으로 여겨졌을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들을 보여줍니다.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보디빌더 남자의 머리와 사이즈가 비슷한 작품 중앙의 왕관을 쓴 포드(FORD) 자동차 로고는 자동차를 암시합니다. 그는 사타구니 높이에 '팝(POP)'이라고 쓰여있는 거대한 막대사탕을 들고 소파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인공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반나체 여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2. 어제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 이 작품은 앞서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 카탈로그에서 보신 1956년 원본 콜라주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의 1964년 버전입니다. 이미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쏟아지는 소비문화에 둘러싸인 현대판 아담과 이브가 등장합니다. 아담은 '팝'이라고 적혀 있는 라켓 사이즈의 사탕으로 신체의 일부를 가린 근육질 남자이고, 이브는 램프의 갓을 쓰고 나체로 소파에 앉아있습니다. 해밀턴은 이 작품을 위해 미국 잡지에서 잘라낸 이미지들을 사용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 침체로 중산층 대부분이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국에서, 최첨단 사치품으로 가득 찬 작품 속의 공간은 미국식 물질주의에 대한 풍자인 동시에 TV 속 광고가 부추기는 물질주의적 환상을 조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팝아트라고 하면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이용한 쉬운 미술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자본주의가 폭발하며 물질주의가 팽배한 20세기의 풍경을 그 누구보다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담아낸 굉장히 지적이고 세련된 예술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자본주의 속 물질만능주의를 완전히 타파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질문을 던져줄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가혹한 런던 (Swingeing London 67)

*이 작품은 1967년 레드랜즈 체포 사건 당시 갤러리 주인 로버트 프레이저가 믹 재거, 키스 리차드와 함께 마약 혐의로 체포된 사건으로 인해 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1980년대에 런던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로버트 프레이저는 스윙잉 60년대의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악명은 당대 가장 유명했던 록 스타들과의 우정, 스캔들, 파티뿐만 아니라 예술계의 차세대 거물을 찾는, 부인할 수 없는 재능으로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 런던의 트렌드 세터 중 한 명인 로버트 프레이저의 갤러리는 화가, 팝스타, 작가, 배우, 기타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로버트 프레이저가 수감되는 동안 그의 갤러리는 문을 닫았고 그가 평소에 전시 리뷰를 수집하기 위해 고용한 대행사는 신문 1면에 보도되는 그의 재판에 대한 보도자료를 수집하였고, 프레이저의 비서는 기꺼이 리차드 해밀턴에게 그이 이 콜라주 작품의 기반이 된 보도자료 스크랩을 빌려주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당시 로버트 플레이저의 갤러리를 대표했던 브리짓 라일리 작품의 일부분과 신문 스크랩, 향 포장지 조각, 마스(MARS)의 포장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페이지의 헤드라인 "스톤즈: 강하고 달콤한 향냄새(Stones: "A Strong, Sweet Smell of Incense)"는 경찰이 키스 리차드의 집에 도착했을 때의 향으로 가득했던 안개를 나타냅니다. 리차드 해밀턴은 '분노한(incensed)' 언론의 광분과 당혹스러운 기사를 교묘하게 조롱한 반면, 경찰은 '향(Incense)'냄새가 대마초 냄새를 덮기 위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의 포스터에 포함된 언론 보도는 밴드 멤버들이 법정에 도착했을 때의 복장, 그들이 타고 온 차량, 믹 재거와 로버트 프레이저가 수감 중 먹은 음식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는 점, 당시 재거의 여자친구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모피 러그를 제외하고는 나체로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점과 같이 관련 없고 선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롤링스톤즈의 팬들 사진, 특히 "당신의 우상이 투옥되는 것을 보는 고통"이라는 캡션이 달린 우는 여성의 클로즈업 사진은 두 남자가 벤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진과 대조되어 이야기가 언론에 의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를 강조하였습니다.

리차드 해밀턴은 런던이 활기차고 자유로운 문화의 중심지라는 당대의 보도를 언급하면서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 "신나는 도시(The Swinging City)"라는 제목을 추가하였습니다. "런던: 신나는 도시"는 1966년 4월 15일 타임지의 표지에 등장하였습니다. 리차드 해밀턴의 이 타이틀은 '신나는(swinging)'도시에서 '가혹한(swingeing)'처벌이라는 말장난입니다.

타임 (Time)

리차드 해밀턴

1965, 스크린 프린트, 28*21cm

 

증거 (Testament)

리차드 해밀턴

1993,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83.9*59.2cm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리차드 해밀턴

1992,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29.5*21cm

*이 작품은 해밀턴이 1956년 런던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 전시회 '이것이 내일이다'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어제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이미지의 새로운 버전입니다. 그는 1956년 콜라주 제작 경험을 1990년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하고, 퀀텔 페인트박스를 사용하여 현대 시대를 반영하도록 이미지를 재작업했습니다.

해밀턴은 모든 요소를 담을 수 있는 인테리어 이미지를 검색하는 것으로 새로운 디지털 콜라주를 시작했습니다. 해밀턴은 수년 전 아티스트 데릭 보쉬어가 자신에게 보낸 스페인 호텔 침실의 엽서를 방 구조의 기초로 선택했습니다. 해밀턴은 이미지를 스캔하고 오려 붙여 확대한 후 가정 용품과 두 사람의 인물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이미지는 모두 시사적인 것이었습니다.

방 세 벽면의 벽지는 회로 기판을 스캔하여 만든 것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강조합니다. 방의 두 창문에는 1991년 걸프전을 연상시키는 먼지 구름 속의 탱크와 에티오피아 난민을 연상시키는 군중 등 전쟁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탱크가 있는 창문 옆 받침대에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옹호한 마가렛 대처(1979-1990년 영국 총리)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습니다.해밀턴은 키치한 장식품을 고가의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킨 쿤스의 작품과 관련하여 미국 예술가 제프 쿤스의 이름을 캡션으로 달았습니다.

흉상 옆벽에 걸린 그림은 1966년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가 만든 상징적인 'LOVE'이미지를 '에이즈'라는 네 글자 단어로 변형해 히피 유토피아주의의 실패를 아이러니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방 중앙에는 흰색 테이블 위에 놓인 흰색 전자레인지가 마른 피시 핑거 접시 옆에 놓여있고, 그 뒤에는 가상현실 영화 제작을 다룬 영화 '잔디 깎는 사람(1992)'이 TV에서 재생되고 있습니다. 목성 행성은 1956년 해밀턴의 콜라주 작품의 달 천장과 1992년 율리시스 우주선이 목성을 방문했을 때를 연상시키는 조명으로 전자레인지 위에 매달려 있습니다.

해밀턴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성 정체성과 성 정치의 극적인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리지널 버전에서 소파에 앉아있는 풍만한 여성 대신 잡지에서 본 유연한 여성 보디빌더의 이미지를 대체했습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막대사탕(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린이가 길을 건널 때 교통 정지를 위해 사용됨)에는 'STOP-CHILDREN"이라고 적혀 있어 1956년 콜라주에서 'POP'이라고 적힌 남근 모양의 막대사탕과 대비되는 코믹한 느낌을 줍니다.

리차드 해밀턴은 1956년 근육질 남성 보디빌더를 코닥(Kodak)에서 빌린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찍은 런던 금융가의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1992년의 남자는 컴퓨터 화면과 전화기로 둘러싸인 책상 위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집에서 금융 시장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어 통신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성장하는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켄트 주 (Kent State)

리차드 해밀턴

1970, 스크린 프린트, 100*69.5cm

🎧#13. 켄트 주

: 리차드 해밀턴은 정치 및 사회 문제를 예술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와 같은 형식의 작품 중 가장 강렬한 작품으로, 대중 매체인 카메라로부터 나온 이미지를 활용한 것입니다. 1970년 5월,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는 오하이오 켄트 주립대학에서의 시위에서 오하이오 주 방위군이 대학생 시위대에 발포를 한 사건이 있습니다. 해밀턴은 이 사건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를 촬영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이 우리의 마음속에 수치심을 간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옳은 것 같았고, 큰 판 인쇄물을 널리 배포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고발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이미지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미지가 방출되었으며, 해밀턴은 카메라를 통해 대량생산될 이미지를 찍어 판화, 인쇄, 출력 등의 대량생산할 수 있는 표현 매체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남아 당시 사건은 잊히지 않고 무한복제되어 재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의 미술은 아름답고 힐링 되는 것만을 추구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이를 사유하고 고민하며 파고드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눈의 즐거움을 넘어 머리와 가슴에 박히는 것들을 선보이고 있죠.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역사와 근대화의 과정 속에 많은 상처를 가진 입장에서 점점 잊혀 가는 역사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작품으로 기억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것은 매우 좋은 상황이다. (Hers is a lush situation.)

리차드 해밀턴

1964, 스크린 프린트, 81*122cm


🖼️

【대중문화와 팝아트】


 

『데릭 보쉬어』

렛츠 댄스 - 데이비드 보위 (Let's Dance - David Bowie)

데렉 보쉬어

1982, 오프셋 리소그라프, 91.4*91.4cm


『피터 블레이크』

더 비틀즈 (The Beatles)

피터 블레이크

2002, 스크린 프린트, 71.1*55.5cm

페퍼 중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피터 블레이크

1967, 오프셋 리소그라프, 75.8*50.8cm

🎧14, 페퍼 중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

: 피터 블레이크가 디자인한 비틀스의 여덟 번째 앨범 '페퍼 중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 앨범 커버는 1960년대 사이키델릭 문화를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작품은 블레이크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널리 재생산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명 아티스트가 아니었던 젊은 블레이크는 디자인에 대한 대가로 200파운드, 한화로 30여만 원만 받았고 모든 저작권과 로열티 계약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훗날 이 작품으로 인해 블레이크는 영국의 상징적인 팝 아티스트로 유명해졌고, 블레이크의 대표작인 이 앨범 커버로 인한 로열티와 저작권보다 더 높은 명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표지는 대중문화 아이콘부터 스포츠 스타,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70여 명의 당대 유명 인사를 실물 크기로 배치하며 비틀스가 가장 가운데에서 포즈를 취하는 콜라주 형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 속 다양한 문화와 사회의 광범위한 레퍼런스는, 1960년대 스윙인 런던이 제공한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블레이크에게 이 작업은 의도적으로 복제 가능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고, 예술의 복제성이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블레이크는 예술은 대중적인 모습으로 널리 배포되어 수백만 명이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블레이크는 아내 잔 호워스와 아트 딜러 로버트 프레이저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협업, 즉 공동작업을 통해 과거 다빈치, 미켈란젤로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능한 단일 예술가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으며, 분야와 사회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작업 방식을 찾으려는 창의적인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포토존

포토존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1. 판타스틱 한 캡틴과 갈색 먼지 카우보이 - 앨튼 존

(Captain Fantastic and Brown Dirt Cowboy)

앨런 앨드리지, 1975

2. 페퍼 중사 (Sergent pepper's)

피터 블레이크, 1968

3. 그들은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거 알아요?

(Do they know It's Christmas? - Band Aid)

피터 블레이크, 1984

4. 로저 - 데위비드 보위 (Lodger - David Bowie)

데렉 보쉬어, 1979

5. 화이트 앨범- 비틀즈 (White Album - The Beatles)

리차드 해밀턴, 1968

6. 록키 호러 쇼 (The Rocky Horror Show)

마이클 잉글리시, 1973

7. 번개 - 줄리 펠릭스 (Lightning - Julie Felix)

데이비드 호크니, 1974

8.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 조지 오라이슨

(Castelnuovo-Tedesco - Jorge Oraison)

데이비드 호크니, 1982

9. 나비 무도회 - 로저 글로버 앤드 게스트

(The Butterfly Ball - Roger Glover And Guests)

앨런 앨드리지, 1974

🎧#15. 더 비틀즈 화이트 앨범

: 1968년 폴 매카트니는 리차드 해밀턴에게 오늘날 '화이트 앨범'으로 알려진 비틀즈의 아홉 번째 앨범, '더 비틀즈'의 커버 디자인을 부탁했습니다. 해밀턴은 아무 이미지도 없는 흰색 표지를 선택했고, 마치 한정판인 것처럼 밴드의 이름과 일련번호만 넣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로서는 이례적이게 앨범에 비닐을 씌우지 않았습니다. 리차드 해밀턴은 자신의 '반대로 사고하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해밀턴은 매카트니에게 비틀즈의 여덟 번째 앨범인 '페퍼 중사'의 앨범 표지는 활기로 가득 차서 이 앨범은 완전히 깨끗한 시트에 흰색 표지만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앨범을 단순하게 '더 비틀즈'로 부르자고 제안한 것도 해밀턴이었습니다. 각 앨범에는 개별 일련번호가 찍혀 있는데, "500만 장에 달하는 넘버링 에디션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의 대량 생산된 상품이 한정판처럼 독특한 예술 작품이 되어 시대를 풍자할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였고, 예술이라는 상위 문화와 대중문화라는 하위문화 사이의 진정한 크로스오버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이 앨범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리차드 해밀턴의 '오리지널'작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해밀턴은 앨범 내부의 포스터도 디자인하였는데 흰색 배경에 비틀즈 멤버 네 명의 사진으로 작업한 콜라주였습니다. "비틀즈의 더블 LP를 평범한 포장지만으로 포장한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며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큰 인쇄물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해밀턴의 '반대로 사고하는'습관은 명확하게 보이죠. 포스터는 멤버들의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찬 반면 앨범 커버는 비어있었으니까요. 이 작업이 끝나고 매카트니는 '해밀턴으로부터 훌륭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며 '대단한 선생님'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비틀즈 화이트 앨범 포스터 (The Beatles White Album Poster)

리차드 해밀턴

1968, 오프셋 리소그라프, 87*58.5cm


『앨런 앨드리지』

돌아보지 마 (Don't look back)

앨런 앨드리지

1967, 리소그라프, 78.6*50.5cm

감당하기 어려워져 (Gettin' in Over My Head)

피터 블레이크

2004, 스크린 프린트, 68*68cm

 

1. 심장박동 도시 - 더 카 (Heartbeat City - The Cars)

피터 필립스

1984,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2. 믹스업 - 패트릭 오헌 (Mix Up - Patrick O'Heran)

앨런 존스

1990,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3. 나선 (Spiral)

조 틸슨

1983, 세리그라프와 목제, 33*33*3.5cm

4. 돈 렌델 - 이안 카 퀸텟 (The Don Rendell - Ian Carr Quintet)

제럴드 랭

2019,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5. 페이스 댄스 - 더 후 (Face Dances - The Who)

피터 블레이크, 리처드 해밀턴, 앨런 존스, 데이비드 호크니,

R.B. 키타이, 패트릭 콜필드, 조 틸슨 등

1981,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6. 붉은 장미 스피드웨이 - 폴 매카트니 앤 윙스

(Red Rose Speedway - Paul McCartney and Wings)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73,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7. 그녀는 아름다움 속을 걷는다 - 마리안느 페이스풀 with 워렌 힐즈

(She walks in beauty - Marianne Faithful with Warren Ellis)

콜린 셀프

2021,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8. 렛츠 댄스 - 데이비드 보위 (Let's Dance - David Bowie)

데렉 보쉬어

1982, 오프셋 리소그라프

9. 파우스트 테이프 - 파우스트 (The Faust Tapes - Faust)

브리짓 라일리

1973, 오프셋리소그라프, 31*3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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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Ⅰ】

『콜린 셀프』

전기 의자 (Electric Chair)

콜린 셀프

1968, 스크린 프린트, 97*40cm

* '전기의자'는 콜린 셀프가 시인 크리스토퍼 로그와 함께 만든 포스터 시입니다. 이 포스터는 당시 전기의자가 여전히 사용되던 미국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미지와 함께 로그의 시가 등장하는데, 광고의 언어를 모방한 스타일로 쓰여 있습니다.

로그의 시와 셀프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국가가 승인한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형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갤러리, 박물관 커뮤니티센터 등 공공장소에 널리 배포되어 전시되었으며, 예술과 시가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힘과 아름다운 6번 (Power and Beauty NO.6)

콜린 셀프

1968, 스크린 프린트, 707*98.5cm


『조 틸슨』

비밀 (Secret)

조 틸슨

2003, 목재 조각, 38*36.5cm

*2003년 재제작한 '비밀'은 조 틸슨이 1963년에 만든 혼합 미디어 예술 작품입니다. 신문 스크랩, 지도, 페인팅 요소 등 이미지와 텍스트가 콜라주 된 스크린 프린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생생한 색상과 대담한 그래픽 디자인이 특징이며, 구성의 다양한 요소가 역동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중심 요소는 보드에서 잘라낸 정사각형으로, 그 아래에 이미지와 텍스트의 콜라주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 컷아웃은 작품의 기본 레이어에 시청자의 주의를 집중시켜 깊이와 복잡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이 컷아웃은 틸슨이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3차원 형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밀'은 틸슨의 예술적 발전에서 중요한 순간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이 작품은 틸슨이 다양한 미디어와 기법을 실험하던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예술과 일상의 교차점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얀 팔라흐 (Jan Pallach)

조 틸슨

1970, 스크린프린트

대지 의식 (Earth Ritual)

조 틸슨

1972, 스크린 프린트, 102*69.5cm

알체라 (Alchera)

조 틸슨

1977, 스크린 프린트, 84.9*54.5cm

빅토리아 베컴 (Victoria Beckham)

제럴드 랭

2007, 스크린 프린트, 76*56.5cm

크림색 단지 (Cream Glazed Pot)

패트릭 콜필드

1979, 스크린 프린트, 83.8*59.7cm

🎧#16. 빅토리아 베컴

: 1960년대는 제럴드 랭에게 매우 생산적인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은 후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며 당시 가장 상징적인 팝아트 이미지를 제작했습니다.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묘사하는 '링컨 콘티넨털'과 그 당시 상징적인 섹시 아이콘이었던 '브리짓 바르도'를 통해 팝의 미학을 담아낸 것이었죠. 이후 30여 년간 조각에 전념하다가 2000년대 초, 제럴드 랭은 이라크 전쟁을 강렬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팝아트에 복귀했습니다. 새롭게 선보인 전쟁 그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랭은 고무되었고, 유명인과 대중문화를 주제로 하는 케이트 모스,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빅토리아 베컴 같은 인물 작업을 다시 이어나갔습니다. 1960년대 작품과 마찬가지로 랭의 그림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스타의 '완벽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대담한 색채를 보여주었는데요. 유명 인사의 초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랭의 작품은 명성, 악명 등 유명인의 이미지에 집착해 아이콘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페이스 댄스 - 더 후 (Face Dances - The Who)

피터 블레이크, 리차드 해밀턴, 앨런 존스, 데이비드 호크니,

R.B. 키타이, 패트릭 콜필드, 조 틸슨 등

1981, 오프셋리소그라프, 58*58cm

* 이 작품은 당시 인기를 끌던 음악밴드 '더 후'의 'Face Dances' 앨범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블레이크가 미국에서 더 후의 멤버 피트 타운센드를 만나 앨범 표지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룹 멤버들의 사진을 촬영한 후 16명의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작품으로 작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피트 타운센드: 빌 제클린, 톰 필립스, 콜린 셀프, 리차드 해밀턴

-로저 달트리: 마이클 앤드류스, 앨런 존스, 데이비드 인쇼, 데이비드 호크니

-존 엔드위슬: 클라이브 바커, R.B. 키타이, 하워드 호지킨, 패트릭 콜필드

-케니 존스: 피터 블레이크, 조 틸슨, 패트릭 프록터, 데이비드 틴들

베이브 레인보우 (Babe Rainbow)

피터 블레이크

1968, 스크린 프린트, 66*44cm

*1960년대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복제품 제작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모든 사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연결되었습니다.

도도 디자인이 의뢰한 베이브 레인보우는 원래 에나멜 명판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이 디자인은 주석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되어 10,000개 한정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개당 단 1파운드에 판매된 이 제품은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 디자인은 1967년 프랑스 잡지 마리끌레르의 표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베이브 레인보우에 등장하는 소녀의 얼굴 특징은 잡지 표지와 비슷하지만 다른 프로토타입을 참고하여 조정되었습니다. 이 이미지에 대하여 블레이크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가상의 여성 레슬러인 그녀는 스물세 살이며 링에서 코 뼈가 부러졌다. 런던 뉴크로스에서 태어났으며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레슬링을 한다."

모건 르 페이스풀 (Morgan Le Faythful)

피터 블레이크

1968, 실크스크린, 75.8*50.8cm

🎧#17. 데일리 텔레그래프 매거진

: 피터 블레이크가 1968년 '데일리 텔레그래프 매거진'을 위해 제작한 포스터입니다. 표지 속 여성은 영국 가수인 마리안느 페이스풀로, 황폐한 영국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용을 타고 온 아서왕 전설 속 '모건 르 페이'의 현대판 '모건 르 페이스풀'을 만들었습니다. 블레이크는 당시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고, 블레이크의 아내이자 조각가였던 잔 하워스가 용을 만들고 의상까지 제작했습니다. 이미지 좌측 말풍선 안네 이렇게 쓰여있네요.

"맙소사! 모건 르 페이풀이다! 그녀가 우릴 구해줄 거야!!!"

보수적이었던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풍자적 요소가 가득한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에 도전했던 피터 블레이크의 풍자와 표현 감각을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티 센터 라이트 오페라 (City Center light Opera)

제럴드 랭

1968, 스크린 프린트, 63.5*88.9cm

혁명적 자살 연대 밴드 2부

(The Revolutionary Suicide Mechanised Regiment Band. Part 2)

데렉 보쉬어

2018, 오프셋리소그라프, 40*30cm

포토존

데이비드 호크니 영상 중 일부

 


<팝아트와 섹슈얼리티>

성인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팝아트와 섹슈얼리티

어제의 남자들 (Yesterday's men)

앨런 앨드리지

1970, 오프셋리소그라프, 80*60cm

첼시 소녀들 (Chelsea Girls)

앨런 앨드리지

1970, 리소그라프, 75.3*51.1cm

*첼시 걸스는 앤디 워홀과 폴 모리세이가 감독한 1966년 미국 실험 언더그라운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워홀이 장편 및 단편 아방가르드 예술 영화를 연이어 제작한 후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입니다. 호텔 첼시와 뉴욕의 여러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그곳에 사는 젊은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며 워홀의 슈퍼스타들이 다수 출연합니다. 영화는 분할 화면으로 제공되고, 각 장면마다 사운드트랙과 흑백 및 컬러 사진이 번갈아가며 나타납니다.

이 영화는 스타 니코(Nico)의 1967년 데뷔 앨범 '첼시 걸'에 영감을 주었으며, 이 앨범에는 호텔과 그 주민들에 대해 노래한 발라드풍의 트랙 '첼시 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포스터 속 소녀는 16세의 클레어 쉔스톤(Clare Shenstone)으로 훗날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창의성과 에로티시즘이 돋보이는 이 포스터는 영화의 관능적인 정수를 담아냈으며 런던 개봉을 위해 그래픽 아티스트 앨런 앨드리지가 디자인했습니다.

워홀은 이 디자인에 매우 만족하며 '영화가 포스터만큼 좋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앨런 앨드리지는 이 포스터 디자인으로 인해 음란물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받아 그의 변호사가 혐의를 없앨 때까지 며칠간 숨어 있었던 한편, 디자인 앤 아트 디렉터 클럽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런던 미소만 짓고 오세요 (London Come Wearing a Smile)

앨런 앨드리지

1968, 리소그라프, 51*76cm

무슨 뜻이에요? (What do you mean what do I mean?)

앨런 존스

1970, 오프셋리소그라프, 67.31*40.64cm

아이스캔디 (Iced Lolly)

마이클 잉글리시

1972, 리소그라프, 63*90.5*2cm

누드 (Nude)

데이비드 호크니

1984, 오프셋리소그라프, 179*122cm

*호크니 작품 속 모델은 테레사 린 러셀(Theresa Lynn Russell, 1957년 3월 20일생)은 4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미국 배우입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에는 주류 영화부터 독립 및 실험 영화에 이르기까지 50편 이상의 장편 영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러셀은 로스앤젤레스 교외 버뱅크에서 가난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보냈으며,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이후 러셀은 모델 일을 시작했고 영화 제작자 샘 슈피겔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테레사 러셀의 사진으로 작업한 이 콜라주 작품은 영화감독 니콜라스 로에그(Nicolas Roeg)가 호크니에게 자신의 영화 '무의미함(Insignificance, 1985)'에 등장할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며 만들어졌습니다.

1980년대 다양한 시각과 시야에 대한 연구를 여러 형태의 콜라주로 작업하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마릴린 먼로 역을 맡은 배우 테레사 러셀이 나체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중앙에 배치하는 포토콜라주를 만듭니다.

이 시기에 호크니는 사진을 통해 다양한 표현 방식이 어떻게 복잡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갑니다. 호크니는 러셀의 신체를 무수히 촬영하여 분할한 다음 1984년 6월 17일 누드 사진으로 재조립합니다.

"에로틱한 사진만 30초 이상 바라보게 되지만, 제 핀업은 아주 천천히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더 흥미롭고 에로틱합니다."

무릎 꿇은 여자 (Kneeling Woman)

앨런 존스

1972, 리소그라프, 2000*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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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ming 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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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와 물】

1972년 뮌헨 올림픽 (Olympishe Spiele München 1972)

데이비드 호크니

1970, 리소그라프, 101.9*63.8cm (99.1*36.5cm)

비틀즈 일러스트 가사 퍼즐

(The Beatles Illustrated Lyrics Puzzle In A Puzzle)

앨런 앨드리지

1970, 오프셋리소그라프, 84*47cm

베니스 시계 (Venetian Watch), 2019

차우 씨 성냥갑 (Mr. chow Matchbox)

데이비드 호크니

1984, 실크스크린, 3.8*5.1cm

25 야레 수오미 (25 Jahre Suomi, Rosenthal)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2001, 세라믹, 7*9.5cm each

노르망디 봄의 도래 (The Arrival of Spring, Normandy)

데이비드 호크니

2020, 파인 본차이나, 20.5*3.5*16.5cm

노래집 (Song Book)

데렉 보쉬어

1979, 오프셋리소그라프, 30*20cm

도자기 (25 Jahre Suomi. Rosenthal)

패트릭 콜필드

1969, 세라믹, 20cm

 
 

 

더 큰 첨벙 영화 포스터

(예술가의 초상(수영장의 두 인물 디테일, 1972))

(A bigger Splash Promotional Poster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 detail, 1972))

데이비드 호크니

1975, 실크스크린, 81.9*106.5cm (78.7*104.1cm)

*잭 하잔(Jack hazan)이 감독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기를 다룬 반허구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파트너였던 피터 슬레진저(Peter Schlesinger)와의 고통스러운 이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스윙잉 런던과 LGTBQ 장면의 잔재를 따라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성기 시절 삶과 작품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일광욕하는 사람 (Sunbather)

데이비드 호크니

1966, 오프셋리소그라프, 66*51cm

🎧#18. 일광욕

: 동시대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가장 좋아하는 모티브는 물입니다. 호크니는 1964년 비행기에서 로스앤젤레스를 내려다보았을 때 하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수영장 물결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집에 수영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로스앤젤레스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개인 야외 수영장은 호크니의 눈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겠죠. 또한 1967년까지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영국에서 동성애자였던 호크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영국 시민, 특히 호크니와 같은 노동 계급 출신의 경우 수영장에 대한 최초 경험은 보통 공공 수영장에서 였는데요. 사춘기 시절 타인의 신체에 대해 목격한 경험은 공동체 내에서, 특히 동성애가 지금보다 극심히 억압되어온 당대 사회 분위기에서 살아간 호크니에게 크게 작동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 호크니에게 로스앤젤레스의 개인 수영장은 긴장과 해방, 자유롭고 에로틱한 상호 관계의 의미로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표면과 깊이가 공존하는 물은 유동성과 긴장감에 대한 은유로도 종종 미술 작품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6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경험한 호크니는 더 이상 영국의 억압적인 속성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물의 유동적인 표면의 묘사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우정을 탐구해 나갔고, 물을 주제로 다양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신의 표현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의 찰나를 아주 느리게 그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보이게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하였고 시간의 흐름 속에 물결치는 물의 라인을 정지시켜 현실을 표현했음에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몽환적 풍경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호크니는 이집트 미술을 접하며 고대 이집트 벽화의 선명한 색감에 반했고, 또 공간성이 단순화된 평면성과 시간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오묘하게 표현하기 좋은 물이란 소재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물 표현이 완성된 것이죠.

수영하는 제리 (Jerry Swimming)

데이비드 호크니

1982, 실크스크린, 91.4*61cm

🎧#19.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포스터

: 이집트 미술과 피카소의 연구에 영향받은 호크니는 시점과 시간이 뒤섞인 사진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며 본인 예술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중에서도 물은 시간성, 평면성, 공간성에 대한 다채로운 작업 주제로 활용되어 왔기에 여전히 그에게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물의 흰색 물줄기와 물방울은 메를로퐁티가 일컬은 대로 "깊이감을 나타내기 위한 소동"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그 물의 표면 밑에 무엇이 있을지, 깊이는 어떨지 예상할 수 없죠. 물의 깊이감과 반사면에 대한 강한 흥미로운 작품 속 평면성과 깊이감은 절묘하게 절충되며 표현됩니다. 그에게 있어 물이야말로 회화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평면성"과 "공간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피카소 입체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한데요. 입체주의의 다양한 시점에 의한 공간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배운 호크니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한 번에 보이는 시각에서의 장면을 여러 시점으로 눈이 깜빡이는 속도로 보이는 것처럼 여러 번 촬영하여 작업을 해나갑니다. 여러 시점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자르고 재구성하는 것이죠. 한 장의 사진에 내재되어 있는 원근법의 법칙을 완전히 뒤엎어버림으로써 사진이 갖고 있는 재현이라는 체계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입니다. 여기에 1초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선 존재할 수 없을 시간의 흐름을 호크니 자신이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마치 회화와 같은 효과를 가져다주게 한 것이죠. 호크니는 말합니다.

"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 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없애고 현재의 시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사진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좀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 보여지는 것들과 그 실재의 모습 사이의 간극에 대한 그의 끝없는 탐구정신은 호크니 작품들을 통해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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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가 사랑한 인쇄술】

🎧#20. 팝아트와 판화 인쇄술

인쇄 기법

 

파리에서 피터 랑간과 장 마크 무시스

(Peter Langan and Jean Marc Moussis, Paris)

데이비드 호크니

1975, 리소그라프, 47*32cm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자인한 레터헤드를 특징으로 하는 비즈니스 서신

(Business correspondence featuring letterhead design by 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1989, 28*22cm

팩스 표지 (Cover sheet for faxed drawing)

데이비드 호크니

1999, 30*20cm

팩스로 전송된 그림 '바다 옆 호텔'

(Reproduction of faxed drawing 'Hotel by the Sea')

데이비드 호크니

1999, 68*107.4cm


『마이클 잉글리시』

주스 (Juice)

마이클 잉글리시

1970, 리소그라프, 63*90.5*2cm

러브 페스티벌 (Love festival)

마이클 잉글리시

1967, 스크린 프린트, 85.4*110.3*4cm

정사각형 안의 움직임 (Movement in Squares)

브리짓 라일리

1970, 스크린 프린트, 64*48cm

🎧#21. Movement in Squares

: 브리짓 라일리는 작품 제작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기 위해 단순한 사각형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라일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사각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하학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정사각형은 안정적이고 대칭적이며 각도와 크기가 같은 고도로 개념화된 형태입니다. 저는 처음 몇 개의 사각형을 그렸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은 없었어요."

사각형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이 디자인을 완성한 다음, 대비를 주기 위해 각각의 사각형을 검은색으로 칠했습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본 후에 그녀는 놀라움과 환희를 느꼈다고 합니다. 라일리는 정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설정한 다음, 캔버스 전체에 걸쳐 높이를 유지하면서 너비에 변화를 주며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각형의 폭은 캔버스 중앙으로 갈수록 좁아져 가늘어졌다가 오른쪽 가장자리로 갈수록 다시 넓어집니다. 마치 제본된 책의 페이지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두 개의 평면이 서로 만나서 구부러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죠. 도형의 진행이 강화되고 절정에 이르렀다가 다시 완화되는 과정을 통해 감상자는 안정성과 불안정성,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지각 감각에 자극받아 단순한 감상이 아닌 경험한다는 느낌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처럼 브리짓 라일리는 움직임과 깊이의 착시를 만드는 기하학적인 모양과 대조적인 색을 사용하는 옵티컬아트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리듬, 반복, 패턴으로 가득한 라일리의 그림은 향정신성 약물이 일으키는 것과 같은 감각을 유도할 수 있었고, 멍해지고 싶은 사람들, 사이키델릭, 환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연구에 열광하며 작품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라일리는 말했습니다.

"제가 사이키델릭 문화의 한 측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여서 놀랐습니다. 예술가로서 의도와 제가 처한 문화적 맥락 사이의 충돌이었습니다."

뮌헨 올림픽 (Olympische Spiele München)

앨런 존스

1972, 리소그라프, 100.8*63.8cm

1972 올림픽 아트 포스터 (Olympische Spiele München)

피터 필립스

1971, 스크린 프린트, 102*64cm


『 R.B. 키타이』

남십자 공화국 (The Republic of Southern Cross)

R.B. 키타이

1964, 리소그라프, 78*5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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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Heinz)

마이클 잉글리시

1970, 리소그라프, 63*90.5*2cm

 

 

아이스크림 (Ice-Cream)

마이클 잉글리시

1968, 리소그라프, 68.5*101.5*2cm

필립모리스 (Philip Morris)

마이클 잉글리시

1970, 리소그라프, 63*90.5*2cm

쇠라로부터의 배움 (Learning from Seurat)

브리짓 라일리

2016, 오프셋리소그라프, 80*60cm

빨강 빨강 파랑 (Red Red Blue)

브리짓 라일리

1968, 스크린 프린트, 28*38cm

장미 장미 (2012 런던 올림픽 게임 포스터)

(Rose Rose (London 2012 Olympic Games Poster)

브리짓 라일리

2012, 오프셋리소그라프, 87*69.5cm

레오로케이션 (Leolocation)

피터 필립스

1970, 스크린 프린트, 82.1*59cm

결혼에 대하여 (Concerning Marriage)

앨런 존스

1964, 리소그라프, 76*56.5cm / 95.7*63.7cm

🎧#22. 결혼에 대하여

: 앨런 존스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다소 기이하고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이미지에서도 남자를 상징하는 검은 중절모와 정장, 여자를 상징하는 노란색 원피스와 하이힐과 같은 요소들을 하나의 몸처럼 배치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결합하고 있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의 내용을 작품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니체는 글을 통해 결혼은 "창조된 자들보다 더 나은 한 사람을 창조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행위로 말하였는데요. 앨런 존스는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를 결합시켜서 유한한 개별적 존재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니체의 창조성 개념, 즉 창조성이 우리 안에 있는 남성적 측면과 여성적 측면, 남성적 행동 여성적 창조의 완벽한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유사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죠. 저는 제 작품에서 이 '결혼'을 발견했다고 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았고, 저의 미숙함을 알기에 제목을 '결혼' 또는 '완벽한 결혼'이 아닌 '결혼에 관하여'라고 아주 정확하게 붙였습니다."

이는 니체의 심오함 앞에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셀렉-오-매트 템페스트 Ⅰ (Select-O-Mat Tempest Ⅰ)

피터 필립스

1972, 스크린 프린트, 73*121cm

🎧#23. 셀렉-오-매트 템페스트

: 눈길을 사로잡는 이 이미지는 피터 필립스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직사각형 패널 격자로 이루어진 대형 작품으로 각 패널에는 밝은 색상의 이미지나 패턴이 담겨 있습니다. 패널은 무작위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 역동적인 구성을 만들어내며, 제목은 1960년대에 유행했던 자판기의 일종인 '셀렉-오-매트'에서 따왔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의 맥락에서 볼 때, 제목에 자판기를 언급한 것을 1960년대 팝아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소비문화의 화려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그래픽과 시각적 언어를 연상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또한 필립스는 '셀렉-오-매트'를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작품과 당시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있던 제품 및 광고 사이의 연관성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필립스는 1960년대 영국 팝아트 운동의 핵심 인물로, 일상적인 사물과 대중문화를 예술 작품에 접목하여 예술과 미학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은 소비 지상 문화의 생생한 색상과 대담한 그래픽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와 같은 형식의 접근 방식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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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Ⅱ】

『앨런 존스』

섬, 나무 (Islands, The Tree)

앨런 존스

1988, 리소그라프, 75*106.5cm


『 R.B 키타이』

1972 뮌헨 올림픽 (München 1972 Olympic Games)

R.B. 키타이

1972, 리소그라프, 115*64cm

완벽한 그래픽 (The Complete Graphics)

R.B. 키타이

1969, 리소그라프, 85*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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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24. 데이비드 호크니

: 데이비드 호크니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사랑, 정체성, 자연과 예술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활기차고 다채로운 작품은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는 호크니에 대해 표현할 때 그는 무한한 상상력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지닌 진정한 선구자이자 예술의 대가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진정 있는 독창성을 지닌 거장이며,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고 미술계에 새로운 영감을 주는 선구자적인 예술가인 셈이죠. 호크니의 작품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팝아트 운동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의 작품은 하나의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묘사하든, 호코니의 작품에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으며 특유의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상 조합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죄수 (Prisoner)

데이비드 호크니

1975, 오프셋리소그라프, 73.1*60cm (72.4*59.1cm)

*For Amnesty International

"렘브란트는 자신의 얼굴을 오랜 시간 면밀히 관찰해 그 '긴 시간'을 자화상으로 담아냈어요.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죠. 사진은 반대죠. 사진을 고작 4초 본다 해도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본 시간보다 긴 시간이에요. 자명하고 치명적인 약점이죠. 그림은 그렇지 않아요."

늦여름 휴게이트를 보면서, 한여름: 동오크셔

(Looking towards Huggate, Late Summer from Midsummer: East Yorkshire)

데이비드 호크니

2004, 리소그라프. 56.7*38cm

셀리아 그림 (An Image of Celia)

데이비드 호크니

1984, 오프셋리소그라프, 99.2*67.1cm

그레고리 그림, 디테일 (An Image of Gregory, Detail)

데이비드 호크니

1984, 오프셋리소그라프, 83*50cm (82.6*50.2cm)

*David Hockney

: "사물을 가까이서 볼 때 가끔 한쪽 눈을 감는 것, 즉 자신을 카메라처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렇지 않으면 사물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입체파 화가들은 눈을 감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피카소가 사람의 얼굴을 왜곡했다고 불평하죠. 저는 왜곡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피카소가 30년대에 그린 연인 마리 테레즈 월터(Marie-Thérèse Walter)의 놀라운 초상화를 보면 피카소는 침대에서 그녀와 몇 시간 동안 아주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을 겁니다. 그렇게 바라본 얼굴은 5-6피트 거리에서 본 얼굴과 다르게 보입니다. 눈, 뺨, 코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반전과 반복이 일어납니다. 어떤 왜곡이 나타나지만 현실이기 때문에 왜곡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그림들은 그런 종류의 친밀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보그 (Vogue par 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1985, 실크스크린,39.5*30cm

가수와 정원, 어린이와 마술(디테일)

(The Garden with Singers from L'enfant et les sortilèges(detail))

데이비드 호크니

1980, 리소그라프, 101.6*143cm

파리에서 셀리아 (Celia, Paris)

데이비드 호크니

1973, 오프셋리소그라프, 71.1*52cm

흰 꽃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셀리아

(Celia in a Black Dress with White Flowers)

데이비드 호크니

1972, 오프셋리소그라프, 76.2*50.8cm

*1980년 LA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제미니 G.E.L(Gemini G.E.L)과 함께 셀리아 버트웰(Celia Birtwell)과 앤 업튼(Ann Upton)의 석판화를 작업합니다. 이후 타일러 그래픽스로 옮겨 조 맥도날드(Joe McDonald)와 헨리 겔첼러(Henry Geldzahler) 등 더 많은 석판화 초상화를 제작합니다.

"초상화는 단순히 그림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통찰력으로도 구성됩니다. 셀리아는 제가 정말 잘 아는 몇 안 되는 소녀 중 한 명입니다. 셀리아를 여러 번 그렸지만 그녀를 알면 항상 조금씩 다르게 그려집니다. 셀리아의 얼굴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닮은 꼴을 그리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녀는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그린 모든 그림을 보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토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레고리

(Gregory Loading his Camera, Kyoto)

데이비드 호크니

1983, 오프셋리소그라프, 99.2*62.5cm (99.1*63.5cm)

뉴욕에서 스케이터 (The Skater, NY)

데이비드 호크니

1982, 오프셋리소그라프, 85*62cm (66*49.5cm)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레고리 (Gregory, LA)

데이비드 호크니

1982, 오프셋리소그라프, 99.1*68.6cm

*Gregory, Los Angeles

: "사진은 중립적인 관찰자의 상태를 동경한다.

그러나 중립적인 관찰자 같은 존재란 있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눈으로 조사되어야만 하며, 진실되고 실제적인 묘사는 그러한 경험의 기록이어야 한다."

1.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Igor Stravinsky, Metropolitan Opera, 1981)

데이비드 호크니

1981, 리소그라프, 124.5*213.4cm

2. 퍼레이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Parade, Metropolitan Opera)

데이비드 호크니

1982, 오프셋리소그라프, 124.5*213.4cm

*Parade: 데이비드 호크니는 많은 극작품과 협업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프랑스 단편 3부작인 프란시스 풀랑의 '레 마멜 드 티레시아스'(Les Mamelles de Tirésias by Francis Poulenc), 모리스 라벨의 '앙팡과 소르띠에'(L'Enfant et les Sortileges by Maurice Ravel), 에릭 사티의 발레 '퍼레이드'(Erik Satie's Ballet Parade)의 포스터는 호크니가 미니애폴리스에서 본 피카소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기술 감독은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재개장한지 얼마 안 되어서 관객들이 빛과 다채로운 색채를 찾는 겨울에 '퍼레이드'가 무대에 올랐죠. 지금까지 메트로폴리탄에서 선보인 적 없는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이었어요.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들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줬죠. 데이비드는 그걸 가능하게 만든 주요 인물이었어요. [...] 무대 작품 제작에서 흔히 놓치는 부분이 예술 작품을 향한 일종의 경의거든요, 또 무대 작품의 감성적인 면과 합일되는 것도 쉽지 않죠. 데이비드는 잘 해냈어요."

3. 퍼레이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Parade, Metropolitan Opera, New York)

데이비드 호크니

1981, 실크스크린, 104.1*203.2cm

 

체크 슬리브를 입은 셀리아 (Celia Wearing Checked Sleeves)

데이비드 호크니

1973, 리소그라프, 91.5*66cm

*The New World Festival of the Arts

: 1982년 마이애미의 The New World Festival of the Arts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포스터입니다.

이 페스티벌의 포스터에 사용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크레파스 드로잉 'Detail of Zanzibar with Postcards and kiosk(1980)'은 풀랑 오페라 'Les Mamelles de Tirésias'의 세트 디자인 중 하나를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한 밝고 쾌활한 분위기의 풍부한 색상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당시 뉴욕 타임스는 The New World Festival of the Arts를 "세계에서 가장 야심차고 비용이 많이 들며, 역사상 가장 위험한 예술 축제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초연 22편을 포함한 현대극, 오페라, 음악, 무용 등 200편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야심찬 행사이지만 480만 달러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6월은 마이애미에서 끔찍한 날씨의 달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3년 전 축제를 계획할 때만 해도 마이애미 경제가 이렇게 급격히 침체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엽서와 키오스크가 있는 잔지바르, 티레시아스의 가슴

(Zanzibar with Postcard and Kiosk from Les mamelle de Tirésias)

데이비드 호크니

1980, 오프셋리소그라프, 97.8*90.8cm

1. 꽃 (Flowers)

데이비드 호크니

1980, 리소그라프, 88.9*66cm

2. 정물화, 타지호텔, 봄베이 (Still Life, Taj Hotel, Bombay, 1977)

데이비드 호크니

1977, 종이에 크레용, 95.3*69.2cm

3. 빨간 스타킹을 신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셀리아

(Celia in a Black Dress with Red Stockings)

데이비드 호크니

1972, 오프셋리소그라프, 80*63.2cm (88.9*63.5cm)

BMW 아트카 뮤지엄 에디션 (BMW Art Car Museum Edition)

데이비드 호크니

1995, 메탈

피어블로섬 하이웨이, 두 번째 버전

(Pearblossom Highway, Second Version)

데이비드 호크니

1986, 오프셋리소그라프, 93.4*82.7cm (82*92.7cm)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주 안텔로프 밸리(Antelope Valley)의 138번 국도 교차로에서 거의 800장의 사진을 찍으며 8일을 보냈습니다. 호크니는 여러 시점에서 장면을 촬영하며 고요한 모하비 사막 풍경에서 드라마와 움직임을 만들어냈습니다. 빛나는 푸른 하늘, 먼 산, 흩뿌려진 쓰레기들이 사진에 담겼습니다.

🎧#25. 피어블러섬 하이웨이 1번

: 이 포토몽타주는 도로 표지판, 조슈아 나무, 쓰레기로 가득한 사막의 고속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입니다.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어 붙이면서 포장도로가 부서져 주변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효과로 연출되기도 하며, 도로를 여행하는 사람의 시선 이동을 보여줍니다.

호크니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은 단순히 교차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운전하는 모습에 관한 것이었어요. 저는 3일 동안 운전자이자 승객이었죠. 운전자와 승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도로를 보는데 이 그림은 그 점을 다루었습니다. 도로의 오른쪽에서는 운전자가 되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교통 표지판을 읽고 왼쪽에서는 승객이 되어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도로를 따라가는 것처럼요."

1980년대 호크니는 다양한 각도와 다른 시간대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풍경 사진들로 포토몽타주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대상을 묘사해 시각을 분할하고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그의 영웅이었던 피카소의 영향이 보이기도 하네요. 호크니는 집을 그리기 위한 구성을 짜기 위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으면서 이 기법을 발견했습니다. 이미지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 겹쳐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사진보다는 그림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을 콜라주 하는 순간 그건 그림 같은 것이 됩니다. 사진을 결합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그림을 그릴 때 하는 일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콜라주 자체가 드로잉의 한 형태이고요. 저는 항상 콜라주가 20세기의 위대하고 심오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겹의 시간을 다른 겹 위에 올려놓는 거잖아요?"

 

 

라벤더 페투니아 (One Lavender Petunia)

데이비드 호크니

1989, 오프셋리소그라프, 101.54*72.7cm (72.6*51.2cm)

웰 호텔 전경 Ⅲ (Views of Hotel Well Ⅲ)

데이비드 호크니

1984-85, 리소그라프, 81.2*55.9cm

🎧#26. 멕시코 아카틀란 호텔 안뜰

: 전시회 참석을 위해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호크니는 근처에서 자동차가 고장 나 우연히 발견한 아카틀란 호텔에 머무르게 됩니다.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그 공간이 너무 좋아서 5일 동안 자동차 수리가 끝날 때까지 핑계 삼아 머물렀다고 합니다.

호텔의 안뜰을 그릴 때 호크니는 시점이 너무 다양해서 캔버스 표면 위에서 계속 눈을 움직여야 했다고 합니다. 모든 눈의 지점을 한 화면에 담고 싶었던 것이죠.

한 지점의 시각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림에는 명확함과 질서가 있습니다.

걸어 들어가고 싶은 착각이 아닌 이미 그림 속에 들어가 걸어 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죠. 사진과 같은 하나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 즉 사진기로 한 번에 찍히는 장면이 아닙니다. 인간의 눈은 한 번에 찍힌다고 한 번에 다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여러 각도에서 여러 관점으로 여러 순간에 걸쳐 보는 풍경은 보는 이의 시각적, 정서적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진처럼 한 번에 하나의 장면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시대에도 회화가 유의미하다는 것이 호크니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호크니의 알파벳 (Hockney's Alphabet)

데이비드 호크니

1991, 리소그라프, 34.3*25.4*3.2cm

1. 작은 부지 (Little Boodge)

데이비드 호크니

1993, 오프셋리소그라프, 42*28cm

2. 사과 두 개, 레몬 한 개, 꽃 네 송이 (Two Apples&One Lemon&Four Flowers: For Los Angeles Herald Examiner)

데이비드 호크니

1991, 리소그라프, 57.6*37cm

3. LA 필하모닉 (L.A. Philharmonic)

데이비드 호크니

1980, 오프셋리소그라프, 70*54.7cm (71.1*57.2cm)

4. 탁자 위의 꽃, 사과와 배 (Flowers, Apple&Pear on a Table)

데이비드 호크니

1986, 실크스크린, 63*42.9cm

브래드퍼드 바운스 (Bradford Bounce)

데이비드 호크니

1987, 실크스크린, 42*60cm

푸른 기타와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lue Guitar)

데이비드 호크니

1977, 리소그라프, 67.3*61cm

🎧#27. 푸른 기타와 자화상

: 푸른색 커튼을 옆으로 당기면 화가의 작업실이 나타나고, 색색의 물감 점으로만 칠해진 테이블에 앉아 기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 맞은편에는 윤곽선으로만 구성된 의자가 있고, 배경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도라 마르 흉상을 인용한 조각이, 그리고 전경에는 허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요 원근감을 따르지 않은 이 각각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사실적으로 묘사된 푸른색 커튼으로, 이 그림이 캔버스에 연출돼 그려진 공간을 표현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아마도 그가 사용한 물감 병이 테이블 위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우연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의 주조색이 된 푸른색이 호크니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 색이라고 할 수 있죠. 호크니는 1903년 피카소가 그린 '늙은 기타리스트'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1936년 시 '푸른 기타를 든 남자'를 접한 후, ' 푸른 기타'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호크니는 시의 내러티브가 아닌 주제를 시각적으로 해석하여 피카소에게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표현했습니다.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시,

"푸른 기타를 치는 남자(The man with the Blue Guitar)(1937) 중 일부 -

"월리스의 시는 피카소 작품의 영감을 받았어요. 그래서 시를 다시 그림과 판화로 바꿨죠.

전 그 시에서 이 문장이 좋았어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연주하지 않는군요.'

사람들이 피카소에게 이런 말을 했잖아요.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군요.'

'있는 그대로'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회화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려고 사용하는 도구들 때문에 결국 눈을 속이게 되죠.

글쎄요. 이 시가 제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불어넣었고 그냥 되는대로 드로잉을 그려내기 시작했어요."

 

태양이나 죽음을 오랫동안 볼 수 없음을 기억하세요.

(Remember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 2021)

데이비드 호크니

2021, 스크린 프린트, 89.4*25.4cm

🎧#28. 태양이나 죽음을 오래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

: '태양이나 죽음을 오래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라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애니메이션 영상 프린트입니다. 태양 광선이 스크린을 가로질러 극적으로 퍼지면서 점점 더 밝게 변하는 오리지널 영상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격리 기간 동안 iPad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영상은 2021년 5월 한 달 동안 뉴욕 타임스퀘어, 런던 피카딜리,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서울 코엑스, 일본 신주쿠에서 매일 저녁 8시 21분에 상영되었습니다. 전 세계 명소에 디지털 일출을 선사하며 희망과 협력의 메시지를 선사하고자 한 것이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가 겪어야 했던 힘든 경험이었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각 나라들에서는 저마다의 상대적인 기쁨과 비극이 있었습니다. 일부 국가는 부러워할 만한 수준의 보호를 누린 반면, 다른 국가는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죠. 나라마다, 개인마다 처한 수많은 팬데믹 상황에서 태양만큼 보편성을 지닌 상징은 없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힘은 인류 역사의 오랜 세월을 관통하고, 새벽은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줄 것이란 희망으로 치환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말합니다.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제 작품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 포스터 디자인

(Die Frau ohne Schatten Poster Design)

데이비드 호크니

1992, 스크린 프린트, 76.1*50.7cm (76*56cm)

트리스탄과 이졸데 Ⅰ(Tristan und Isolde Ⅰ)

데이비드 호크니

1987, 리소그라프, 99*36cm

 


₩7,500,000 😂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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